6월 책모임  <은유작가 강연> 후기




- 빛


안녕하세요.  

강의를 위해 신경 써주시고 마음담아 준비해주신 팝콘님께 너무나도 감사드려요.

그리고 기회를 제공해주신 사람마음에게도 정말 감사드려요.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닐 것 같은데 덕분입니다. ㅎㅎㅎ

강의를 듣고서 제가 느낀 강의의 주제는 '어떻게 글쓰기가 공적인 글쓰기가 될 것인가'였습니다.

강의에서는 글쓰기가 개인적인 성장과 회복에 있어서 무척 강력한 도구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개인적인 글쓰기를 공적인 글쓰기로 만들기 위해 작가로서 제련된다는 것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어요.

먼저 전자의 설명을 들을 때는 글쓰기를 통해 나의 내면에 더 깊이 닿고, 나의 고통들을 정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것에 대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구요.

그런데 두번째 부분에서는 내용이 도전적이었던 나머지 좀 좌절을 하지 않았나 해요. ㅎㅎ

도전이라면, 독자에게 의미있고 가치롭게 전달될 수 있는 컨텐츠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얘기해주셨거든요.

허세와 과도한 자의식을 베어내고, 그저 고통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통찰하여 조금이라도 객관화된-전달 될 수 있는- 언어로 만들것, 그리고 명확한 주제의식과 간결성, 내러티브로서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서사로서의 말하기 방법(일명 '보여주기'), 오리지널리티. 이런 부분들을 강조해서 이야기 해주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공적인 글쓰기가 되는 과정에서 또 저 자신이 지성인으로서 발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음, 그런데 저희는 지금 고통을 꺼내보는 단계에서도 주저하고 있는, 그 단계에서조차 여러가지 심리적인 장애물과 사회적인 염려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우리의 글이 의미 있어지기 위한 조건'을 알기에 앞서서 우리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고 서로를 격려해야 하는, 어쩌면 걸음마같은 단계에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다른 한국의 수기작가들 두분을 떠올려봤습니다. **님이나 ***님..

이분들의 글은 누군가에게는 일견 겪은 고통의 나열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덜 다음어졌다고도 할 수 있고, 철저히 독자중심으로 쓰여질 수는 없는 선천적인 한계를 가진 책들이죠.

하지만 저에게는 타인에게서 나와 같은 고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그 자체로 희망과 생명력이었던 글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날까지 죽지않고 이르러 여태의 지옥같은 고통을 그들의 의식에 떠올리고 결국 언어로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됨이 승리했다는 증거처럼 보이니까요.

생존자 수기에는 그런 공로와 업적이 늘 있습니다.


우리의 글도 쓰여지는 것 만으로도 그런 공로와 업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저희 스스로 용기내어 봐야 할 것 같아요.

쓰여지는 것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감당하는 과정이니까,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 속에 담아내려는 과정이니까 글을 써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겠죠?


강의가 가리키는 것은 프로페셔널한 목표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강의였다고 느껴지지만 저희의 기대치를 그보다는 낮추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강의에서 말씀해주신,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개인적으로 얻어 나갈 보물들,

우리의 목소리가 일종의 증언이 되어 공적인 글로 남을 때 이것이 advocacy로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점을 더 의식적으로 많이 기억하려고요.


부차적으로 제가 강의를 들으며 얻은 저에 대한 발견은, 제가 글을 쓰고 싶은 동기는 분노에서 나오고, 이 세상을 비난하고 고발하고 싶은 욕구라는 것이었네요. 이것도 큰 발견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로 좋은 자극과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 강의였어요. 다시 한번 사람마음과 팝콘님께 감사드려요~!!




- 야다


 사람마음에서 마련해주신 작가와의 만남을 잘 가졌습니다. 조금 더 글을 쓸때 어떤 마음으로 써야 할지 분명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유작가님에 대해서는 나와 같은 경험을 지닌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람이라 생각되어 뭔가 더 특별한 만남을 기대했던 거 같습니다.  나에게 용기를 주고, '당신들은 특별해요' 라고 말해줄 거라는 그런 기대였습니다.


 작가님의 수업은 자기자신의 글쓰기 원칙, 말하자면 전문 작가의 글쓰기 원칙이었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추어는 기대한 용기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배울 것이 있었습니다.  저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저는 가치가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구조를 파악해 전달해야함을 얘기해 주셨어요. 높은 완성도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염두에는 두되 엄격하게 적용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작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거든요. 지금은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나의 목소리를 적어봐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책을 왜 쓰는 걸까. 뭘 기대하는 걸까 라는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영향을 준다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거나, 저작권료를 벌 수 있다거나. 그런 일들은 너무 멀고 거대하게 느껴졌습니다.(책으로 버는 수입은 아주 미미하다고 합니다. 출판으로 인해 강의를 하게 되면 그것이 가계에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작가님이 하신 말 중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보상을 줄거 라는 말이 좋았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 그 시간들이 제 자신에게 유익을 줄 겁니다.  그리고 시간을 정해서 글을 써야 책을 쓸 수 있다는 얘기에 동의했습니다. 그저 편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하루 이틀 쓰지 않게 되다 보니, 다른 것들로 시간은 채워지고, 진도는 나가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저는 일주일 중 특정시간을 글쓰는 시간으로 정하고, 모임에서는 마감시간을 정하여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좋은 자극이었습니다.

 작가님을 초대하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진


강의 제목은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글쓰기’였습니다.

글을 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운 것,

나의 글쓰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좋았습니다.

 

작가님이 일깨워 준 글이란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 매체였어요.

저한테 글쓰기는 늘 일방향의 표현에 기울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얼마나 읽을 사람을 염두(가슴)에 두고 써왔나?’ 하고 물어보면...

읽을 사람 자리가 미미합니다.

덕분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얘길 들어왔던(소통에 실패했던)

이유를 알게 됐어요. 글이라는 오래된 커뮤니케이션의 매체를

자기표현의 도구로 한정지으며 읽는 쪽을 도외시하거나,

쓰는 쪽과 읽는 쪽,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얘기(입장)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를 의식 않고 써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제 읽는 이(상대)을,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를 의식하고 쓰면서

균형감을 가지도록 힘쓰면, 메시지가 선명해지는 걸까요!

 

좋은 글의 요건 중 ‘질문’과 ‘구체성’ 얘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둘 다 읽는 이의 흥미를 높이는 동시에,

쓰는 이와 소통가능성을 높이는, 시간을 두고 검증된 방법임을 알게 됐어요.

은유 작가님은 ‘독자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자문하며 글을 다듬는다고 해요.

내가 잘 모르는 세계나 아님 너무 익숙한 세계에 대해 들을 때

누구나 지루하거나 피곤할 수 있고 때론 귀를 막고 싶을 수도 있다는 것.

읽는 사람을 생각하고 쓰는 마음!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도 크지만, 그 마음을 배우게 돼 기쁩니다.


작가님에 따르면 글은 ‘성찰’이고 ‘행동’(실천)이고 ‘용기’이고 ‘믿음’입니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며 ‘존재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걱정(두려움)이 아니라 매일의 수련(글쓰기)을 하면서 두려움의 실체를 보아나가면,

두려움에 가려진 ‘내 삶을 구성하는 진면목을 알게 되는’ 길.


작가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깨어있는 것이고 일신우일신하는 수련 같아요.

사람다움(시민다움)을 기르는 글쓰기라고나 할까요.

허나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약자’라며

사회적 약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의 가치를 언급하면서도,

글쓰기가 내 삶의 해석이나 삶의 경험을 둘러싼 구조까지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제게는 벽처럼 다가왔습니다.


제가 지금 쓰는 글은 자기 해석에 못 미치고 헤매는 글들이고

구조는커녕 고통과 분노에 부대끼는 얘기들이지요.

다른 사람과 사회는 물론 스스로도 못 믿고 불신지옥에 빠져있는 제가

불신과 헤매임과 고통과 분노를 토로하는 글은 책으로 내기엔 준비가 덜 된 것일 터.

과연 용기를 잃지 않고 불신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낼 날이 올까...

강의를 들으며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더랬어요.


그래도 시간을 두고 보니 다시 기운을 차리게 하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가능한 만큼 가능한 방법으로 쓰면 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한 사람이라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쓴다.’

‘내가 목소리를 내면 어디선가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글쓰기는 뺄셈이래요. 강의를 들은 뒤 뺄셈 끝에 남은 것은 아래의 두 질문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안될 내 목소리의 실체는 무엇일까.

-내 글을 원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

이 질문을 품고 계속 써 보겠습니다.


아 이제 어떤 벽이었는지 전할 수 있겠어요.

길 끝에 가봤던 여행자에게 “그래 어떤 지점을 거쳐 끝에 도착했나요?” 하고 물었더니

“시작점으로 되돌아가세요”라는 대답을 들은 기분이었어요.

도로 끝이 보이지 않지만, 여행자가 알려준 별들이 하늘에서 희미하게 반짝입니다.

끝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고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린 넷이니까.

혼자보다 더 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작가님과 만나는 자리를 갖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벽에 부딪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의 목소리 내기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은유작가강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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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