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3 난로


 돌아가고 싶다.

 언제나 이 말이 맴돕니다. 돌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요? 저의 경우에는 아마 따뜻한 가정일 겁니다. 항상 가출한 것 같은 심정이었어요. 가정의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라고. 망가지고 기형인 가정이 어디에나 있어서,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저처럼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서, 방랑하면서도 방랑하는 줄도 모른다고. 술을 마시고 외로움 때문에 엉뚱한 짓을 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만나고 세 가지 직업을 동시에 하고 자기가 만든 가정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정감은 느껴지기는 커녕 의무만 느껴지고, 이곳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고 말이죠.

 네, 제 주변에서 보고 들은 케이스들입니다. 한 때 아주 잠깐 유부남 모임에 들어 있었는데요(?) 그곳 아저씨들도 열심히 돌아가고 싶은 얼굴이었습니다. 가정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술을 마시고 이곳에서 시간을 죽이지만 어디에도 자기 자리가 없어서 항상 초조해 하고 있었죠.

 저는 혼자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이내 옅어져, 차가운 입김을 하늘로 불어 올리면서 다들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난 돌아가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혼자인 나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곧 단점을 찾아냈습니다. 이 집은 너무 단열이 안 되고 문제가 많고 내 정보가 노출이 되었고 가해자가 찾아왔고 귀신이 살고 있는 것만 같고 풍수가 좋지 않고 이 지역 자체가 짜증이 나고. 그래서 이사를 많이 했죠.

 그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을 내가 왜 만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상대방에게서 잇점만을 취하는 소시오패스도 될 수 없었습니다.

 

 며칠 전 우리는 약속을 정하고 만나기로 했습니다. 밥을 안 먹었기 때문에 일단 밥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생선집이었습니다. 고기를 못먹는 저와 다른 멤버를 위해서 아마도 생선집으로 선택을 해 주신 것이겠죠. 떠들썩한 곳에 저는 약한 편이기 때문에(원래 산만한 정신이 더욱 산만해져서 제정신이 아니게 됌.-_-;) 뜨거운 돌솥밥을 집어들었습니다. 따가워서 소리를 질렀는데 모두가 걱정해주었습니다.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소란스러웠던 밥집을 떠나 조용한 카페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만, 그건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역 주변이고 연말이라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용케도 한적한 곳을 찾아냈습니다.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잡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습니다. 별 것 아닌 농담에도 와 하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웃음이 터지자 평소에는 제가 맥락에 안 맞는 이야기를 했을 때 헛소리를 한다면서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을 떠올려 좀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함부로 상처를 주면서 그게 친분의 특권이라고 얼버무리는 잔인한 심장을 가진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딱딱한 마루에 앉아 있다가 의자에 앉아있게 된 듯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참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멋지고 따뜻한 사람들일까요. 그리고 일순간이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살짝 떠올랐습니다. 그 못된 사람들에 대해서 분노가 느껴졌고, 미웠습니다. 내가 대신 복수를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멤버 중 한 분이 비폭력대화에서 사용하는 카드를 들고 와서 우리를 위해서 카드를 셔플하고 안내해주기로 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각자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도중에 한 멤버가 울음이 터졌습니다. 소리도 못 내고 우는 모습에 우리도 함께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저는 위로하는 것에도 참 서투릅니다.

 마무리를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내일을 모른다. 이제까지 겪어왔던 인간관계에서도, 사소한 걸로 갈등이 터지고 사람들이 반목하고 화해를 했어도 예전같지 않아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하는 걸 많이 목격해 왔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관계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 항상 회의적인 저입니다. 불안과 초조함과 두려움 같은 것들 말이죠.

 이 모임에서는 그런 검은 감정들이 약해집니다. 참 이상하죠. 머리로 생각합니다. 넓은 바다에서 통나무를 놓치면, 어쩌면 영영 다시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예전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이 배구공을 놓치고 우는 것처럼 불행은 항상 근처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고. 아차하는 사이 무척 울게 될 테니까 마음을 다잡아 놓는 게 좋을 거라고.

 그런데 그런 생각은 그때 돼서 고민해봐도 되지 않나 하고 마음이 좀 누그러집니다. 지금은 여기로 돌아오는 게 좋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알 수도 없고, 전혀 가늠도 되지 않죠. 하지만 돌아갈 자리가 없어서 서성이기만 하던 시간들보다 역시, 돌아갈 곳이 있는 게 좋습니다. 집도 아닌데 집보다 더 포근하고,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사람들이 어색하고 불편한 제가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