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 8월 4일 모임 후기

 

빛님은 알랭드보통의 불안을 가져왔어요. 향후 자신의 삶이 궤적이 어찌될지에 불안해하고 있었고 우리 모두 마찬가지라 공감했어요. 불안은 대체 무엇이기에 악성코드처럼 우리를 좀먹는 걸까요. 불안이 없었다면 벌써 머릿속의 계획을 반 이상 이루었을 텐데 아쉽고 짜증이 나요. 물론, 과거로 돌아가 보면 답은 나오죠. 공포에 떨던 어린아이에게 불안은 답을 이끌어주는 지표였을 거에요. 그러나 지금은 불안이 지표가 아닌 나쁜 버릇이 되어 버렸죠.

저는, 우리는, 그때와 비교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만약 제가 강해졌다면 전 더 이상 그때만큼의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될텐데. 분명 보잘것 없는 변화일지언정 달라졌을 텐데. 나이를 먹다 못해 머리가 세고, 몇 배의 정보와 경험을 머릿속에 우겨넣고, 감정 죽이기 연습을 너무 잘해서 내게 감정이 있긴 한지 의문까지 드는 데 말이죠.

발밑이 20미터이고 빠지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수영은 엇박자가 나고 말죠. 충분히 알고 있는데, 잘 안 돼죠. 이상하죠?

 

야다님은 여전히 사별 책을 잔뜩 읽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사별이랑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아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어요. 내게 소중한 사람이 사라졌을 때 저 역시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냥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나 죽음으로 사라지는 것이나 원리는 같을 텐데 참 이상하고, 정말 다르죠. 몇 번이나 꺼내어본 기억은 내 입맛대로 편집한 게 아닐까 믿음은 가지 않지만, 사람이 죽음 후에는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산다는 것을 실감하기에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을까? 그 사람은 정말 내 느낌처럼 가끔 내 곁에 와주는 걸까? (말을 건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나 말고도 아직도 그 사람을 떠올리고 소환하는 사람이 남아 있을까?

야다님의 경우와는 아주 많이 다르지만 또 같은 점이 있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순 없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야다님 이야기를 듣고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아파해야 하고 주변의 이해를 받기도 어렵고, 나아지라는 걱정을 빙자한 야속한 말을 들어야 하는지는 아주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우리의 씩씩한 야다님은 쏘쿨하게 괜찮다 주변에서 이해를 잘 해주신다 이 정도의 고통은 조율할만하다 라고 이야기해주시는 게 아니겠어요! 감탄하기도 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스트랭스 파인더(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이라는 책을 소개했어요. ‘인간은 강점과 약점이 있으며 약점을 고쳐 흠결없는 상품이 되라는 자본주의적인(..)태도를 버리고 강점에 주목하라는 게 이 책의 요지죠.

저는 이에 나아가 약점을 장점으로 활용할 순 없을까 고민을 했답니다. 예를 들어 불안장애라면 이를 활용해서 완벽한 결과를 내고? 슬픔이 많으니까 신파 소설을 쓰는 등??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고 찾는 중입니다.

최근 제가 존경하는 작가는 트위터에인생을 리셋해서 다시 살고 싶다고 썼어요. 그건 아마 안 되겠죠. 남은 인생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코드를 다시 쓰기엔 너무 늦어버린 프로그램처럼, 불안과 슬픔 같은 어두운 감정 위에 너무 많은 인생을 쌓아왔어요. 자신을 다른 인격으로 리셋하는 건 무리. 그러니까 설령 부정적인 감정을 크기를 줄이려 노력할지언정, 이런 나를 완전히 개혁하려는 무의미한 시도는 그만두고, 이걸 어떻게 활용해나갈까를 고민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책모임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디테일은 달라도 결이 같죠. 특별하되 특별하지 않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딛고 일어선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불러 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때문일까요. 일정 아이템을 던졌을 때 다른 모임과 구별되는 놀라운 수용력과 이해를 경험할 때가 많아요. 같은 사건의 단편을 두고도 이해하는 농도와 깊이가 확연히 달라요. 이 날도 그랬어요, 저는 제가 발견한 책모임의 장점을, 우리 멤버들이 적극 활용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