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에 저항한다”

  6월 1일, 서울의 중심인 시청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스무 살이 되었다. 20년 전 50명으로부터 시작한 목소리가 먼 곳의 북소리처럼 퍼져 나갔다. 오직 ‘우리가 여기에 있다’ 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소리가 8만의 축제를 이루고 벽장 속 사람들을 이끌어 냈다. 스무 해가 지난 지금, ‘다양한 가능성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며 해방감을 느낀다’, ‘일곱 살 난 자녀에게 세상을 알려주고 싶다’ 고 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함께 들린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여전히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이 그들만의 축제에 심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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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의 조건, 존재와 자유

  일본계 미국인이며 동성애자인 헌법학자 켄지 요시노는 『미국 동성애자의 역사』 라는 책을 소개하며 188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동성애를 이성애로 전환하려 했던 여러 가지 시도를 설명하고 있다. 동성에 대한 사랑을 극복하기 위해 외과적 절제술, 뇌엽 절리술, 전기 요법이 사용되었고 이러한 처치를 받은 사례들이 당사자의 목소리로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기존 ‘이성애적’ 통념에 기댄 몰이해가 가져온 끔찍한 인권 유린이었다. 1935년 미국정신의학회(APA)는 이러한 요법을 통한 전환치료가 동성애자를 전환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했고 좀 더 조심스러운 임상의들은 최면 혐오와 같은 심리치료만을 사용했다. 

  그러나 언어로 이루어진 이 심리치료는 절제와 전기 충격 요법 없이도 다분히 폭력적이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 그 이미지가 구현하는 마음을 혐오로 바꾸는 것은 심장을 찢는 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료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역사로 기억된다. 이러한 비극의 배경은 미국의 역사에서 성별 이분법에 따른 이성애는 ‘인간다움의 조건’ 중 하나였기에 사회에 소속되려는 갈망이 ‘동성애자로서의 자아’를 죽이고 스스로를 부정하도록 한 것이다. 


전환과 병리화의 벽을 부수고

  194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전환치료가 대대적으로 유행했고 수많은 오류와 비극을 거쳤다. 전환치료에 대해 체계적으로 ‘보이는’ 연구들이 수행되었고, 결핍 모델로써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제 1판은 동성애를 ‘정신병리’로 분류했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성 과학자인 알프레드 킨제이는 비정상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고, 에벌린 후커는 동성애 병리화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1970년에 미국정신의학회 총회에는 익명의 게이 정신의학자가 등장했고 동성애자 활동가들은 전환 ‘가능성’을 주장하는 대신에 전환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969년 스톤월 항쟁을 통해 벽장을 나온 성소수자들의 움직임과 정신의학계 내의 연대가 시작되며 DSM 분류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마침내 1973년 12월 DSM에서 동성애는 삭제 되었다. 현재 미국심리학회와 정신의학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그 어떠한 전환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하며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전환 치료는 반치료적이며 비윤리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전환의 시도는 모두 사라진 것일까.


전환 시도의 흔적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기사의 댓글들은 노골적인 공격, 근거없는 편견과 혐오 조장으로부터 시작해 ‘너무 드러내거나 퍼뜨려서는 안된다’ 와 같은 짐짓 교양있는 척 온건한 입장을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세련된 태도로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렇게 까지 나와서 티를 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통해 벽장 밖으로 나왔지만 또 다른 난관이 놓여 있다. 너 자신을 드러내거나 부각시키지 말라는 요구다. 자신의 정체성,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것을 최소화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요구에 대해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자신에게 가해진 낙인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사람들도 사실은 그 낙인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이 커버링의 요구다” 라고 말했다.

  이제 사회는 주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들이 선호하지 않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표현을 자제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사회의 ‘강요된 커버링 요구’ 는 한 개인이 설 땅을 지워버린다. 사회가 차별금지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소수자들의 평등은 지지하면서도 여전히 청소년들에 대한 동성애조장금지(no-promo-homo)를 인정하거나 ‘덜 드러내기’ 를 요구하는 것은  일관된 태도가 아니다.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우리 각자가 특정한 유형의 사람이 될 권리가 있는 한, 그 사람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권리’ 가 있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당연하기 때문이다. 왜 성소수자들이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지, 성소수자 부모는 왜 자녀와의 면접권과 양육권으로부터 배제되는지를 들여다 보면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은유적인 병으로서 보는 관점이 여전히 지속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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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목소리에 담긴 삶의 보편성

  우리가 만난 성소수자들의 삶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매번 이 이야기가 보편적임을 발견한다. 한 사람의 삶이 충분히 구체적으로 묘사될 때, 그 속에서 인간다움의 조건과 공통된 경험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이들의 진정한 드러냄은 소수자들이 숨어 있는 다른 벽장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해 준다. 우리 모두는 누구도 완전한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같이 웃고, 울고, 아파하고, 생생하게 가슴 뛸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사력을 다하는 무언가가 표현되는 모습이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익숙하고 오래된 공기와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들에 묶여 있다. 이들의 치열함과 두려움 앞에서 ‘사느라 그랬다’ 는 자조와 부끄러움은 피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내가 그저 나일 수 있었을 순간과 놓쳐버린 가능성들을 다시 생각한다. 어느 순간은 조용히 패싱되기를 바라고, 어느 순간은 자신을 적당히 감추며 살아간다. 나 역시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자주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순간은 찾아 온다. 내가 서 있는  사람마음은 한 인간으로서 대답해야 하는 질문들을 피할 수 없는 곳이기에. 부서진 땅 위에 다시 서야 하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제대로 전달될 때까지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하나씩 가진 사람들이다. 정체성과 성적 지향으로 인해 ‘은유적인 죽음’ 을 수차례 통과해야 했고 조용한 절망으로 빠져든 적이 있는 이들이 들려주는 용기, ‘나로서 살아도 좋다’ 는 외침은 어딘가 하나쯤 ‘비밀스러운 자아’ 를 가진 우리 모두를 토닥인다.


<참고기사 및 자료>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6227.html

서울퀴어문화축제 Seoul Queer Culture Festival 공식홈페이지: http://sqcf.org/

켄지 요시노 (2001). 커버링. 민음사; Yoshino, K. (2001). Covering.  Yale LJ ,   111 , 769.

Ellis, A. (1962). Reason and emotion in psychotherapy.

Goffman, E. (2009).  Stigma: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 . Simon and Schuster.

Hooker, E. (1957). The adjustment of the male overt homosexual.  Journal of projective techniques ,   21 (1), 18-31.; Hooker, E. (1958). Male homosexuality in the Rorschach.  Journal of projective techniques ,   22 (1), 33-54. 참고

Katz, J. (1976).  Gay American history: Lesbians and gay men in the USA: A documentary . Crowell.

Kinsey, A. C., Pomeroy, W. B., Martin, C. E., & Gebhard, P. H. (1998).  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 . Indiana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