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람마음에서 상담을 종결하신 생존자께서 상담 후기를 담은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트라우마 심리치료를 망설이는 다른 생존자 분들께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소중한 경험을 나눠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람마음 상담실에서 선생님을 처음 뵌 지 꼬박 1년하고 1개월, 이제 마지막 상담을 앞두고 있습니다. 상담 종료가 제 회복을 알리는 청신호라는 걸 알면서도, 선생님과 작별한다고 생각하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네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어딘가 고장 난 게 틀림없다고 느껴지던 지난해 늦여름, 사람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선생님을 처음 뵈었지요. 저는 제가 강인한 사람이라고 여겨온 모양입니다. 외과 수술 이후 공황 발작이 왔지만 일시적인 문제라 치부하고 2년 넘게 방치했던 제 오만함을, 선생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알아차렸습니다. 비행기에서 숨이 쉬어지지 않아도 그저 아침에 먹은 김밥이 얹혔다고 넘겼고, 수면 장애가 심해져 불안 장애 치료제를 복용하면서도 의사 선생님의 말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집 거실 한복판에서 숨이 막혀오고 나서야 제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마음을 찾았습니다.
노력해야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예쁨 받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배알이 꼬이기도 했습니다. 제겐 그런 행운 같은 기억이 없었거든요. ‘세상이 이토록 불공평하고 부정의한데 그나마 노력이라도 해야지 어쩌겠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선생님을 만나면서 제게도 행운이라는 것이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으리라는 믿음이 조심스럽게 생겨났습니다. 결코 과장이 아니랍니다.
선생님과 대화하며 성실함에 대한 한도 없는 강박이 저를 괴롭히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건강과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데도 성취를 향한 갈망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저를 알아차리게 되었지요. 몇 마디 글로 다 담을 수 없는 불규칙하고 불투명한 마음들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제 안에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음도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안간힘을 쓰는 저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제 안에 있다는 것을, 실은 제가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선생님 덕분에 가까스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외과 수술 전후의 시공간으로 돌아가 보았던 EMDR 트라우마 치료 경험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웠습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한 요즘 같은 시대에 시설 좋은 병원에서 수술받는 게 무슨 호들갑 떨 일이냐며 제가 받은 수술을 가볍게만 여겼는데, EMDR 치료를 통해 수술 전 홀로 공포에 떨고 있던 저를 만났습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입원실에서 저를 바깥으로 이끌어주신 것도 선생님이셨지요.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병원을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거리를 활보하고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공황이 처음 찾아온 그날 그곳으로 돌아가 당시의 저를 바라보고, 그때의 마음을 알아차리며, 스스로 채워둔 자물쇠를 풀었을 때 마음에 뭉쳐 있던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음을 넘어 몸으로도 생생하게 전해지는 후련함이었습니다.
이후로도 파트너와 안전하게 관계 맺는 법에 대해 수개월간 상담을 이어갔지요. 제 일상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섬세하게 도와주신 선생님의 친절과 배려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선생님과 상담을 이어온 1년 남짓, 차근차근 일궈온 일들이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제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며 송골송골 땀 흘릴 수 있었던 것은, 주 1회 상담실에서 선생님을 만나 한 주를 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온 덕분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일상을 단단히 붙잡지 않았다면, 여전히 닫힌 공간이 두려워서, 숨이 막힐까 봐 무서워서, 잠들 수도 깨어 있을 수도 없는 채로 하루하루를 그르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숨이 가빠오면 순간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달리기를 멈추지는 않습니다. 숨이 가쁠 때는 잠시 걷다가, 숨을 고르고 나면 다시 속도를 올립니다. 서부간선도로의 길고 낮은 터널에서 차가 막힐 때면 아직 두려운 마음이 들지만, 그럴 땐 창문을 살짝 열고 오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최근 또 다른 증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다만 전과 달라진 점은, 겁먹은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 알아차리고,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강인함이란 사실 자신의 나약함을 알아차리는 용기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저는 이제 진짜로 강인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자신을 오만하게 오독하지 않기를, 스스로를 안쓰러워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다정한 사람이 되기를’이라고 책상 위 모니터에 적어두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선생님을 찾게 될 날이 오더라도, 이제는 그리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리라는 걸 알기에 든든한 뒷배를 둔 기분입니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모든 분께 사람마음과 선생님이 커다란 행운이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바로 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요.
가을의 문턱에서, 마지막 상담을 앞두고
선생님께 존경의 마음을 가득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