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음 10주년 인터뷰 - 10]
"트라우마, 함께 기억하고 애도할
사회적 고통입니다"
– 홍혜선 활동가/이사 –
Q 안녕하세요 홍혜선 선생님! 사람마음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10년째 사무국 활동가입니다. 몇 년 전부터는 이사를 겸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 생존자 심리 지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관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고민하고 그 가치의 실천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현재의 주된 업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2년 첫 해부터 오랫동안 전화 받고 장부 정리하고, 청소, 빨래, 비품 구입, 각종 가내수공업(?) 및 셀프수리와 대외 업무, 상담가 지원,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존자 지지 활동까지 “사람마음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을 맡았습니다.
Q 사람마음 개소 10주년을 기념해서 상담가/활동가의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창립을 주도한 사람으로, 지금이 사람마음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날을 계획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익활동을 지향하는 기관이니 큰 수익을 쌓는 것은 불가능해도 이렇게까지 재정적 어려움이 지속되는구나 싶어요. 기관 차원이든 개인 차원이든, 재정난이란 건 모든 문제를 재정 탓으로 돌리게 만들고 미래를 그리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하여 판단을 흔든다는 점에서 고약합니다. 그래서 재정난을 포함하여 현재 사람마음의 ‘진짜’ 어려움이 뭔지를 냉철하게 따져보고 “생존자 지원”을 계속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다짐을 글자로 적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서 저 자신에게 책임감을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Q 사람마음은 트라우마의 회복을 위해 개인의 치유뿐만이 아닌 사람과 사회의 연결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그런 비전을 지향하고 있는 이유가 있을까요?
“트라우마, 함께 기억하고 애도할 사회적 고통입니다.” 처음부터 사람마음의 기본 이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유독 트라우마 생존자에 대한 몰이해, 불관용, 부정의를 드러냅니다. 트라우마를 겪고 홀로 감당하려고 애쓰는 생존자에게는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 사회생활 좀 해라 하고, 자기 목소리를 높여 정의를 찾으려는 생존자에게는 너무 과하다, 정말 사실이냐 합니다. 마치 우리 사회에는 잔혹한 역사도, 불의의 사건도 없이 그저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만 있는 것처럼, 생존자가 가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쉽게 빼앗으려 합니다. 영화에서도 한국 사회는 정말 ‘끔찍한’ 사회로 그려지는데, 이건 현실 그 자체입니다. 이토록 트라우마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마음은 한편으로는 어느 날, 느닷없이, 이유도 모른 채 닥쳐오는 트라우마의 속성에 대해 사회적 인식을 부단히 환기 시키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히 개인 생존자의 심리 치료에 집중합니다. 고통이 오직 그것을 겪은 사람에게 고스란히 남겨져서 그 사람의 개인적인 의식 변화가 촉구 되기는 하지만, 오로지 그 한 사람만이 치유의 당사자는 아닙니다. 트라우마로 고립되는 개인이 공동체와 연결되는 문을 발견하고 문고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려면 개인을 헤아리고 돌보는 동시에 공동체가 트라우마를 책임질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10년 전에 한 생존자께서 사람마음을 “중간계”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정체성을 잘 표현하신거라 생각합니다.
Q 홍혜선 선생님이 여러 사회적 기업, 인권단체 중에서도 사람마음에서 일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저에게는 ‘사람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좀 더 정확한 계기인 듯합니다. 처음엔 그저 무턱대고 좋은 거니까 해보자 으쌰 으쌰 했지요. 십 년이 흐른 지금은 ‘반드시’ 필요하다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심리적 외상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어서 사회적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중대한 맹점이 있고, 쉽게 자동적으로 트라우마 사건이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 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일을 보이고 들리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이 또한 공익 활동의 영역이라고 확신합니다. 앞으로 좀 더 ‘구성적으로’ 가열차게 해 볼 겁니다.
Q 사람마음에서 일하면서 가장 뿌듯할 때는 언제인가요?
트라우마는 비밀스럽게 일어납니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더욱. 외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가해자가 만든 두텁고 높은 벽 안에서 인간의 상상력이 따라갈 수 없는 잔혹한 일들이 벌어졌음을 알게 될 때 분노를 느낍니다. 그러나 생존자께서 고난의 과정을 거쳐 본인의 마음의 문을, 사회의 문을 발견하고 여러 번의 심호흡 끝에 문을 열어 빼꼼 고개를 내미실 때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Q 사람마음은 시민의 기부를 통해 운영되는 트라우마 치유센터라고 들었습니다. 홍혜선 선생님이 기부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 또는 기부에 대해서 갖고 있는 철학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사람마음에서 일하기 전에는 기부가 있어야 시민단체가 운영이 된다는 것에 막연했고 사실 누가 누굴 돕나, 누가 나 좀 도와주지 하는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 사람마음에 기부를 시작하면서 기부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너무 소중해서 적재적소에 집행하려고 정말 뼈를 깎아 노력했고, 공익활동을 하는 여러 다른 기관에도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마음처럼 다른 기관도 기부금이 절박하리라는 짐작과 기부금 집행의 투명성에 대한 믿음이 첫 기부를 통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수입이 줄면 기부금액도 다소 줄지언정, 기부를 멈추지는 않습니다. 생존자 지원과 같은 공익 활동은 시작하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그만큼 필요한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Q 마지막으로 이야기해주고 싶으신 것이 있으실까요?
사람마음의 재정난을 생각하면 ‘보이지 않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 보이지 않는 생존자, 보이지 않는 심리 지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부 … 굶주림으로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사람의 사진을 내거는 자극적인 방식으로는 기부를 독려하지 않겠다는 사람마음의 다짐은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기부를 해주시는 사람마음 회원 덕분에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차가 쌓일수록 활동량도 많아지고 활동 영역도 넓어지면서 더 많은 생존자를 지원하려고 하지만 매번 재정난에 발목이 잡혀 지원을 망설이거나 끝내 못하게 되는 것이 현재 사람마음의 핵심 과제입니다. 이 여러 가지 ‘보이지 않음’을 ‘정의롭게’ 해결할 방안을 또 고민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