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음 10주년 인터뷰 - 8]
"모두 함께 공들이는 동행 "
– 최현정 이사/상담가 –
Q 안녕하세요 최현정 선생님! 사람마음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사람마음 이사진으로 운영에 참여하고 있고 생산자 조합원으로 심리치료와 교육,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 생존자의 경험을 사회가 인정하는 밑바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별 개인마다 고통을 완화하는데 최선으로 적합한 심리치료를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을 아우르는 변증법행동치료로 생존자분들과 심리치료 작업 중입니다.
Q 사람마음 개소 10주년을 기념해서 상담가/활동가의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개소 멤버로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에 우연히 2012년 개소할 때 처음 붙였던 간판(A4 용지에 코팅했음)을 꺼내 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10년이 지나갔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인터뷰에 답을 해 봅니다.
Q 사람마음은 수많은 다른 상담기관과 어떤 점에서 다르고, 특별한가요?
10여년 전 개소 무렵에는 트라우마 심리지원을 공익 활동의 의미 속에서 실행하는 공간은 없었어요. 국내에는 트라우마센터라는 말 자체도 없었죠. 트라우마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동료들과 트라우마 지원 활동을 시작했어요. 상담실에서, 길거리에서, 교도소, 법정, 경찰서, 어디에서든 생존자 분들과 만나고 같이 치열하게 버텨 온 거 같아요. 그 때를 떠올리면 어째 춥고 배고픈데 그래도 배짱있는 느낌이…
10년 지난 지금은 트라우마센터가 많이 생기고 국가와 사회에서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분야여서 그 만큼 생존자 분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이 많아졌어요. 정말 잘 된, 필요한 일입니다. 그 중에 사람마음이 여전히 조금 다른 게 뭘까. 솔직하게 말씀드려 봅니다.
우선 트라우마를 사회적 고통으로서 이해하는 관점을 최우선시한다는 점이 있겠고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그런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봅니다. 존재 경험을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하는 게 곧 트라우마이니까요. 그래서 생존자가 사회에 존재한다는 목소리를 스스로 낼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활동의 가치를 중시하고, 그러한 힘을 키우는 것을 심리치료의 중요한 목표로 봅니다. 생존자를 향한 편견과 심리적 고통을 향한 부당한 시선에 맞서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트라우마 지원은 어렵고 정성이 필요해서, 일대일 지원은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어요. 지원은 상담가나 활동가 1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체계를 갖추어서 모두가 함께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상담가, 활동가 모두 풀타임 정규직이고, 네, 사례회의가 많고, 네, 야근도 외근도 있습니다. 서로를 뒷받침하려면 필요한 체계입니다. 체계에 더해서, “너 힘들면 같이 하자”를 서로 해주어야만 하고, “너무 열심히 한다, 그만 물러서”라고 서로 말해주기도 해야 합니다.
삶 전반에 대한 회복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리고 회복 기회는 당연히 자원이 없는 사람에게도 주어져야 하기 때문에, 주변에 자원이 많이 부족하신 생존자 분들이 오십니다. 그래서 다각도의 장기적 지원이 많고, 그러다 보니 지원하면서 난제에도 많이 부딪힙니다. 그래도 여기는 생존자와 끝까지 함께 갑니다. 보통은 외상후스트레스 증상에 효능이 검증된 노출치료(생존자의 구체적 트라우마 경험을 다루면서 활동가는 증언의 목격자가 되는 것)까지 진행하기가 상당히 어렵고, 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마음은 그 이후 작업까지 합니다.
생각해보면, 트라우마 생존자의 삶에 가장 적합한 지원 체계를 고민하다 보니, 하는 일이 참 어렵고 힘이 듭니다. 어렵고 치열하고 금방이라도 그만두고 싶다가도 작은 희망 하나 보여서 생존자랑 버티는 그런 곳 같습니다. 그게, 생존자 지원을 공익활동으로서 수행하는 사람마음의 독특한 점입니다. 과연 워라벨이 뭘까 고민하게 되는데, 나의 직업활동과 내 개인 삶의 의미와 가치가 연결되어 일관성 있는 사람으로 살게 되는 거, 저는 그런 걸 저의 사람마음 활동의 워라벨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Q 최현정 선생님이 여러 가지 심리치료 중에서도 트라우마 전문 심리치료를 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대학을 다닌 2000년대는 소위 진보 운동가의 젠더폭력 문제가 큰 쟁점이 되어 오면서 당시 대학 선배들이 여성주의운동의 지향을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어두운 곳에서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다 스물 둘, 셋 무렵이 됐을 때 기지촌 여성과 성판매 여성을 지원하는 새움터라는 곳에서 자원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완전히 분리된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소수자가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지를 목격하게 됐어요. 2000년 초반은 정신건강 분야에서도 트라우마라는 말에 별로 관심이 없던 시기였죠. 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두려웠고, 무기력했고, 분노했어요. 경기도 송탄에 가서 기지촌 여성의 고통을 지켜본 뒤에, 퇴근하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반대편의 세상은 너무나 무심했고 무지했죠. 어느 곳이 진짜 세상인가 헷갈렸어요. 그 때 저는 많이 우울했고 말수도 몹시 적어졌습니다. 말문이 막혔어요. 그리고, 기지촌 여성의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 때부터 사회 구조 안에서 폭력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고, 제가 전공한 심리학을 통해 우리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임상심리학 공부를 하고 나이가 들면서 고문과 국가폭력의 생존자, 아동학대 생존자, 젠더 폭력 생존자를 만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목격자로서 삶을 살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꼰대가 되어 줄어든 말수가 다시 돌아와 말이 엄청 많아졌네요. 다시 말을 줄여야겠어요.
Q 사람마음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언제인가요?
가장 기쁠 때, 생존자께서 진심으로 자기 마음을 헤아리는 말을 당당하게 할 때.
Q 사람마음은 시민의 기부를 통해 운영되는 트라우마 치유센터라고 들었습니다. 최현정 선생님이 기부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 또는 기부에 대해서 갖고 있는 철학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청춘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사람마음에 있었습니다. 청춘이니까 할 수 있었던가…! 지금 청춘이신 활동가 분들은 청춘을 느끼면서 일하시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청춘이 더 많은 다른 청춘과 고된 길을 함께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활동가들도 자원이 필요하고, 기꺼이 함께 하려는 더 많은 활동가가 필요합니다. 사람마음에 기부하시면, 생존자와 끝까지 가는 활동가들이 고된 일 마치고 집에 가서 충분히 쉰 다음에, 또 다시 기운내서 생존자와 여전히 동행하는 게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마음의 ‘모두 함께 공들여서 끝까지 가는’ 체계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 체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이야기해주고 싶으신 것이 있으실까요?
지금 사람마음을 지키고 있는 활동가 그리고 사람마음에 방문하는 여러 생존자들께 고마움이 들어요. 아무튼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