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는 회복하고 삶을 이어간다.
- 자긍심(Pride)의 달을 맞이하며
괜찮으신가요?
6월은 성소수자들이 혐오와 차별에 맞서 일궈낸 문화와 성취, 연대를 드러내고 기념하는 자긍심의 달이다. 2021년의 자긍심의 달은 더욱 특별하다. 그 누구보다도 앞에 나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던 분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을 치유하고자 어떤 때보다 더 연대하고 뛰었던 것일까. 오랜 시간 표류하던 차별금지법이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청원에 성공하였다. 청원에 성공한 것이 당장 어떤 큰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10만명이라는 숫자가 주는 울림이 있다. 올해 자긍심의 달은 2021년의 절반이 지나가는 와중에 겪은 이 모든 것을 애도하고 축하하기 위한 시간일 것이다. 우리가 닿아있는 방식은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 만약 모두가 함께 피부를 맞닿은채 우리의 삶과 문화를 드러내고, 먼저 떠나간 동료들의 삶을 이어받아 공존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코로나 이전, 매년 한 순간이라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한 시공간에 모여 서로를 지지하고 공명하는 에너지를 받아 1년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친구의 말도 떠오른다. 그만큼 현실에 만연한 혐오 폭력에서 조금이라도 숨통 트이는 경험이 주는 힘은 크다. 연이은 상실과 투쟁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괜찮은지, 어떻게 숨통 트이는 경험을 하고 있는지 안부를 묻게 된다.
정체성 트라우마란, 개인이 특정 소수자 집단 정체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미세 공격, 차별, 자원의 불공정한 배분, 폭력과 범죄에 노출되는 트라우마를 뜻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인과가 뚜렷하지 않으나, 지속적이고 누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트라우마의 영향력을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소수자로서 만연한 혐오 폭력으로부터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게 나다운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영향을 인식하고 회복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회복력이 커질수록 외부의 혐오 자극과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소수자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도 나의 경험들이 정체성 트라우마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접근이 낯설 수 있다. 최근 세레나 윌리엄스에 대한 책의 출판을 기념한 토론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위대한 테니스 선수인 세레나 윌리엄스가 백인들의 스포츠에 참여하면서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험한 부당 대우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대한 토론이었다. 한 기자는 부당 대우가 맞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과잉된 것으로 조절될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 반면 어떤 학자는 일상에서 소수자가 지속적으로 겪는 스트레스와 차별의 맥락을 읽었을 때 그러한 반응은 매우 적절한 반응이며, 백인 남성의 분노와 다르게 수용되는 지점을 생각해보라고 반박한다. 그녀와 같이 성소수자들은 나의 정체성을 비하하거나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규정 당하고, 퀴어 집단 안에서도 어떤 전형을 강요당하고 자기검열하게 하는 등의 혐오 폭력을 끊임없이 경험한다. 그 경험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응으로써의 분노, 우울, 불안, 무기력감 등을 제대로 인정’받거나’, 인정’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단지 개인의 결점으로 읽히고, 고쳐야 할 나쁜 것으로 취급되기 쉽다. 혐오와 아픔을 내 안으로 삼키다 보니 나의 존재가 짐스럽고 ‘비정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성소수자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나는 괜찮지 않다. 그러나 그 괜찮지 않음은 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혐오 폭력은 사회문제이다. 나의 정체성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통제하려는 의도 속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폭력이다. 이에 대한 나의 반응과 감정은 사람이 겪는 혐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내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이다. 그렇기에 괜찮음의 상태로 급히 넘어가기 위해 나를 닦달하는 대신 혐오 자극에 내 몸과 마음이 무엇을 경험하는지 알아차리는 것이야말로 회복력 쌓기의 시작이 된다. 예를 들어, 혐오 자극에 내 몸은 뜨거워질 수도, 차가워질 수도, 숨이 가빠질 수도, 어딘가 막힌 것 같을 수도 있다. 이렇게 나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다 보면 혐오가 만연한 환경에서 필연적으로 늘 방어 태세에서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떤 건물에 언제나 경보가 울리는 상태라면, 그 건물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비상 상황을 처리하는 것에 급급하다 끝내는 아무도 살지 않는 건물이 될 것이다. 늘 방어 태세로 살아가다 보면, 내 안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도 긴급한 상황을 처리하다 소진되어 버릴 수 있다. 그렇기에 몸에서 보내는 방어 반응을 잘 알아차리고 개인이 가진 고유의 속도와 결대로 이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쌓는 것이 성소수자인 나에게 더욱 중요하다. 회복력을 쌓음으로써 경보기가 꺼지는 순간들이 늘어나게 되면, 내 안의 잠재력과 접촉하고 나만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함께 빛나는 순간들을 나눌 기회 또한 늘어날 수 있다.
성소수자 혐오가 공기처럼 존재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회복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힘겹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찰나의 덜 위급한, 조금은 안전한 순간이 존재한다. 찰나의 순간이기에 놓치기 쉽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순간, 내 몸무게를 온전히 받치고 있는 침대의 포근함을 느낀 순간, 슬퍼하는 나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주던 친구 손의 온기가 전해지던 순간… 이처럼 내 안의 경보음이 잠시 꺼지고 안전함을 느꼈던 순간들이 내 안에서 발견되길 기다리는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내 안의 보석들을 발견하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 곧 회복력이다. 잠시 함께 내 안의 회복력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상황이나 대상, 이미지, 감각을 찬찬히 살펴본다… 나 자신으로 온전히 있었던 기억, 자긍심이 느껴졌던 기억, 작지만 이루고 성취했던 기억들을 꺼내어본다… 그 기억들이 나에게 어떤 긍정적 감각을 주고, 나는 내 몸 어디에서 그 감각을 경험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천천히 조금씩 방어 태세에서 벗어나 나인 그대로 머무르는 순간이 늘어남을 느낀다… 혐오와 배제의 논리가 나의 존재를 자꾸만 지워내는 것 같았던 이곳에서도 참 잘 살아왔구나, 참 애써왔구나 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괜찮지 않은 나도 괜찮구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 퀴어문화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축제의 장에 참여하고 여기에 함께 있음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모두의 경험은 저마다의 속도와 결을 가진다. 내 안의 회복력을 발견하고 가꾸는 여정도 그러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잠시 한숨 돌리며 내 안의 회복력과 만나는 순간이 되었길 바래본다. 갑작스런 이별보다 이대로도 충분한 우리들의 만남으로 서로를 맞잡고 만날 때까지 안녕하길.
*[성소수자 혐오폭력 회복력 쌓기 워크북: 네 안의 숨겨진 힘 알자나!]를 참조하여 쓴 글입니다. 해당 워크북은 아래 링크를 통해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워크북 활용과 관련한 문의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사람마음으로 연락주세요.
https://www.traumahealingcenter.org/3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