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의 일하기 좋은 곳만들기

 

(최현정, 트라우마치유센터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충북대학교 심리학과)



 

목격자로서 느끼는 책임감은 묵직하고 아프다. 트라우마 지원 활동가는 일을 하면서 매일 보고 듣는다. 모두가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일어날리 없다고 믿고픈 일을 누군가는 힘이 없고 가진 게 많지 않다는 이유로 겪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겹겹의 조건으로 단 한 순간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 임의의 누군가에게 갑자기 닥쳐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개를 돌려 외면할 수도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와 잔혹의 재연을 목격하는 공포와 무력감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야만 하는 책임이 목격자에게 있는 까닭이다.

트라우마 지원 활동가 그리고 트라우마 지원 기관 의사결정자와 이 글을 나누고 싶다. 특히 활동가가 읽고 동감하면 좋겠다. 활동가는 트라우마를 목격하며 온 몸과 마음으로 생존자의 고통을 받아들이면서도 감히 누구도 생존자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겸손함을 갖추어야 한다. 때문에 이 활동에 필연으로 따라오는 고됨을 차마 인정하지도 호소하지도 못한다.

생존자의 고통은 쉼이 없다는 면에서 그 크기를 견줄 수 없지만, 활동가 역시 생존자가 겪은 생생한 고통을 몸의 감각으로 같이 체험한다. 그리고 활동가는 여러사건의 목격자가 되면서 그 만큼의 감각을 같이 체험해야 한다. 혹여 생존자의 고통이 극심한 나머지 도리어 생존자 그 자신은 마비가 되었을지라도, 마음을 한껏 열어둔 활동가는 생존자의 마비된 고통과 감각을 스스로의 몸으로 겪어낸다. 똑같이 약한 인간일 뿐이지만 당신 혼자 고통스럽게 놔두지 않겠어요하고 마음을 먹었으니 고통이 공명한다 할까 그런 일이 벌어진다. 그 와중에 활동가는 양 발을 땅위에 단단히 디디고자 애쓴다. 생존자의 고통에 공명하면서도 동시에 생존자가 안심하고 아파할 수 있도록 활동가는 뿌리를 잘 내리고 애도의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 생존자가 충분히 아파할 수 있도록 활동가는 묵묵히 버텨야 한다.

가장 어려운 상황은 고통을 주고받는 트라우마 관계가 생존자와 활동가 사이에서 재연될 때 같다. 폭력으로 억압받은 사람의 분노, 부조리에 배신당한 사람의 불신은 신뢰와 협력을 요구하는 활동가를 향해 표출되기 마련이다. 삶이 궁지에 몰려 살아남아야 하는 순간 폭발하는 강한 분노와 공격성, 통제에 대한 강력한 욕구는 결국 살아남은 동력이었음이 분명하지만, 트라우마가 끝나지 않은 생존자의 세상 속에서 그 동력은 활동가를 향한 분노와 불신으로 돌변하기 쉽다.

더 힘든 상황은 생존자를 억압하고 배신하는 마음이 활동가 안에 피어오를 때이다. 생존자에 대한 불신과 무시, 목격을 거부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 생존자의 괴로움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활동가의 고집은 은폐되기 쉽다. 결국에 스스로의 고집을 알아차리게 됐을 때에 활동가는 목격자로서의 죄책감이라는 괴로움에 빠지고 만다.

 

필자가 일하는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에는 여덟 명의 활동가가 생존자를 위한 심리사회 지원을 수행한다. 이곳에는 아동 학대, 성폭력, 조직적 폭력, 혐오 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경제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회복 자원에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공익 법인이기 때문에, 트라우마 고통에 더하여 경제적 사회적 박탈에 시달린 사람들이 찾아온다. 게다가 사람마음이 몇 안 되는 변증법행동치료 수행 기관이다 보니, 자살이나 자해 행동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찾아온다(변증법행동치료는 트라우마와 자살 자해 행동에 효능이 검증된 심리치료 방법이다).

그래서 매주 한번 열리는 사람마음의 사례회의, 격주에 한번 열리는 사람마음 임상가 사례회의는 다중의 위기에 처한 생존자의 이야기와 함께, 꽤 자주, 어떤 시기에는 매주, 버틸 대로 버텼던 활동가의 흐느낌이 공명하는 그래서 눈물 닦으랴 모두 조용히 휴지를 주고받는 시간이 된다. 이 시간은 활동가가 트라우마에 맞서면서 억눌러왔던 자신의 분노, 무기력, 슬픔, 두려움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그만하면 됐어, 더 이상 버티지 않아도 돼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이 둘 사이에 균형을 찾고자 언제나 씨름한다. 결국 대개는 조금만 더 버티는쪽을 선택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활동가로서의 분투를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동료들, 서로의 공로를 인정하고 희망을 대신 발견하는 동료들, 그리고 서로의 성장을 기다리며 지지하고 협력하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마음에서 일하다 떠나간 동료들도 있다. 더 멋진 일터를 찾아간 사람을 제외하고, 떠나간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회상해 보면, 고립되고 소통하지 못한 모습들이 떠오른다. 생존자의 고통을 오직 혼자서 감당하거나, 활동가 본인의 잘못이 결코 아닌 데에도 더딘 회복 과정이나 지원에서의 난관을 숨기던 사람들은 그만 두게 된 것 같다. 결국 생존자의 트라우마 악화에 관여하는 위험 요인이 활동가에게도 괴로움을 주는 거다. 생존자의 트라우마 회복에 기여하는 바로 그 보호 요인은 활동가의 건강한 직업 활동에도 기여한다. 그 보호 요인이란 혼자 있지 않기다. 연결성.

 

연결성은 한 번에 달성된다 하기 보다는 연결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 우리는 이 과정을 한계 관찰이라고 부른다. 실은 우리가 수행하는 변증법행동치료의 가장 중요한 지침 중 하나이다.

한계 관찰은 소진 예방과는 다르다. 단지 어떤 부정적인 상태를 예방하는 경직된 규범이 아니라 지향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적인 만남이 가능할 때에야 트라우마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존자와의 관계 혹은 동료 간 관계에서 인간적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 있는 그대로 마음과 관계를 바라보는 상태에서 관계의 거리와 깊이를 조절해 나간다. 그 알아차림의 상태를 한계 관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한계 관찰을 하는 상태는 스스로와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솔함과 이해심을 발휘하는 상태와 비슷하다. 그렇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삶과 활동가로서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그런데 한계 관찰은 활동가 개인의 노력이고, 트라우마 지원 기관 역시 지속적으로 한계를 관찰하고 조율해 나갈 책임이 있다. 개인이 진정성 있게 활동할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 갖출 것들이다. 업무 결과를 평가해야만 할 때에는 트라우마 지원의 무게와 특수성을 고려하기, 생존자 지원은 활동가 개인이 아닌 기관 전체가 함께 하는 것임을 인지하기, 문제가 생겼을 때 활동가 누구의 잘못을 찾는 것이 아닌 공동의 문제 해결 과정을 거치기, 활동가의 공로를 인정하고 개인이 원하는 방식의 성장을 격려하기,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기, 안전한 느낌의 자문 및 지도 감독 체계를 갖추기, 휴식과 쉼을 챙겨주기 등이다. 때로는 마치 트라우마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함께 노는 것도 좋겠다. 요약하면, 첫째, 활동가의 역량강화에 힘쓰기, 둘째, 활동가의 업무와 쉼의 균형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끊임없이 점검하고 뒷받침하기, 셋째, 고생한 대가를 주기다.

이번 원고를 준비하면서 사람마음 활동가들에게 물어보았다. 사람마음 체계 중에 무엇이 가장 일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여러 활동가들이 휴식 시간에 함께 산책하거나 티타임 가지면서 일상을 이야기하는 순간이 좋다고 답했다. 또 하나는 각방 쓰기였다. 사람마음 심리상담가들은 개별로 상담실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니까 직장 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따로 또 같이라고 사람마음의 조이수현 사무국장이 답했다. 그 밖에 사례 회의, 기관 내부 지도 자문 제공, 기관 외부 지도 자문 비용 제공, 탄력 근무, 유급 교육연차 제공 등이 꼽혔다. 트라우마 지원의 독특성을 인지하고 일하기 좋은 곳이 되는 체계를 구성하고 또 보급하는 것이 사람마음의 또 다른 역할 같다.

 

사람마음 대표로서 필자의 고민이 있다면 급여를 더 넉넉하게 주기이다. ‘고생한 대가 주기가 사람마음의 일하기 좋은 곳 만들기 다음 목표이다. 정부 지원 없는 민간 공익 법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익 활동을 벌이면 벌일수록 거꾸로 수입은 줄어들어갔다. 올해 활동가들은 사람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여 투자이자 희생을 결심했다. 사람마음의 트라우마 지원 활동가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할 수 있도록, 더불어 사람마음에 찾아오는 많은 생존자들이 더 다양한 지원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독자의 관심을 요청 드리며, 기부금으로 힘을 보태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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