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다운 생존자, 비인간적 사회
최현정 (충북대학교,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
2015년 1월, 최승우님이 사람마음에 방문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생존자이다. 14살에 경찰에게서 협박과 폭력을 겪은 뒤 형제복지원에 납치되어 4년 8개월 동안 감금되었다. 형제복지원 안에서 그는 온전한 가슴으로는 들을 수 없는 강도의 고통을 겪었다. 그의 경험에 목격자가 되는 일은 당연히 고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 속에서 생존했음을 넘어서, 남은 삶을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다고 분투하는 한 존재를 만나는 일은 깊이 슬프지만 동시에 가슴 벅찬 일이었다.
사람마음에 방문하기 전부터 그는 이미 또 다른 생존자 한종선님이 시작한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 활동에 증언자로 나서면서 힘을 보태고 있었다. 고향 부산에 아버지와 친구들도 있고 일거리도 있었건만 다섯 시간 걸리는 무궁화호 새벽 기차를 타고 매주 서울에 와 머무르며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일을 해나갔다. 그는 형제복지원 안에서 생활을 ‘사육장 속 짐승 같은 삶’이라고 표현했었다. 이제 중년이 된 그에게 인간다운 삶이란 형제복지원의 진실이 덮인 채로는, 그 잔혹한 역사적 시스템의 가해자들이 죄를 털어놓지 않은 채로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2015년 여름, 진선미 의원이 발의했던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한종선과 최승우의 단식 투쟁은 미디어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2017년 11월 7일에 이 두 사람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숙농성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후 형제복지원 특별법안은 폐기되었다. 이어진 겨울, 최승우님은 눈이 몹시 많이 내리던 아주 어둑했던 어느 날 아침 분신 시도를 하다 경찰에게 제지되었다. 물론 그 무렵 그가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한 말 역시 진심이었다.
20대 국회에서는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국가 폭력에 대한 진상 규명 활동을 포함하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약 4년간 활동했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살려, 형제복지원 강제 수용과 같이 새로 드러난 국가 폭력 사건의 진상 규명을 재개하기 위한 개정안이다.
이 법안을 끝까지 살리기 위해, 최승우님은 결국 지난 2019년 11월 6일 국회의사당역 엘레베이터 탑에서 고공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고공단식농성을 결정하기까지, 그는 깊은 슬픔을 감내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가장 지혜로운 결정을 하겠다고 말하던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결정을 존중해 달라고 부탁하고서, 노부모를 찾아뵙고 같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고 며칠 후, 노숙농성 2주년 무렵 아슬아슬하게 비탈진 탑 위로 올라갔다. 11월 마지막 주인 현재 그는 단식 20일째. 과거사법은 여전히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읽히는 12월에 과연 최승우님과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잔혹한 고통을 겪은 사람이 회복한다는 것은 잔혹 속에서 처참히 꺾인 인간됨을 다시 되찾는다는 뜻이다. 회복이라 함은 단순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정신과 증상의 부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성이란 잔혹한 짓밟힘에도 결코 꺾이지 않음을, 진실이란 무참한 방관과 은폐 속에서도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임을 실감하는 것이 곧 회복이다. 그래서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면서 분신을 시도하고 단식농성을 하는 행위는 그의 마음 안에서는 결코 불일치하지 않는다. 모순이 있다면, 진실을 드러내는 절규의 고통스러운 대가를 생존자가 직접 치러야 하는 이 사회 안에 있다.
1986년, 열아홉살 최승우는 ‘귀가’하지 못했다. 그의 증언을 살펴보면, “사육장 짐승 같은 삶에서 벗어났더니, 내가 내던져진 곳은 ‘정글’이었다.”고 말한다. 생존자가 목숨을 내어 진상 규명을 절규해야만 하는 사회는 사육장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자에게는 더욱 위험한 정글이다.
진실 규명이 되지 않았다면 생존자에게 현재란 없다. 수십 년이 지난 과거 역시 생생한 현재이다. 사실상 진실 없이는 정신과 증상 역시 완화되지 못한다. 국가 폭력 피해자에 관한 여러 국외 연구에서, 책임자 처벌, 가해자 사죄, 배상과 같은 '정의로움'의 체험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사별후 증후군, 우울, 폭발성 분노 문제의 완화와 관련있음이 반복적으로 밝혀졌다.
인권 유린 폭력은 물론, 대규모 재난 재해에서도 정의 회복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기본적인 회복의 필수 요소이다. 필자가 2016년 경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참여했던 연구 자료를 분석했을 때, 유가족이 참사 이후 경험한 '불의', 즉, 진상 규명 문제, 정부 책임 이행 문제, 책임자 처벌 및 사죄의 문제가 유가족의 외상후 스트레스 및 사별 후 증후군 악화와 관련있다는 점이 나타났다. 최근에는 2017년 12월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 센터 화재 참사 유가족을 만났을 때도 같은 모습을 보았다. 곧 2주기가 다가오는 현재 이들 역시 사망자 구조 문제와 관련된 진실을 찾지 못하는 괴로움 속에 남겨져 있었다.
수십 년 전 과거사의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회라면, 이후 일어나는 폭력, 재난 및 참사를 복구하는 바른 길 역시 세울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 문명 아닌 정글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는 진상 규명의 진전을 가로막는 은폐의 시스템이, 단기적 보상으로 진실 규명을 입 막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폐단이 반복됨을 목격했다.
그래서 최승우님의 단식농성은 사실 단지 형제복지원 생존자와 사망자만을 위한 운동은 아니다. 약자를 향한 폭력의 역사에서 배움을 찾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폐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직시이고, 생존자 스스로 목숨을 걸고 그러한 폭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그 누구보다 인간됨의 결연한 의지다.
올해 말 최승우님과 우리는 웃으며 송년 모임 식사를 같이 할 수 있을까. 2년이 넘게 국회 앞에서 칼바람과 땡볕을 견딘 탓에 몸이 성한 곳이 없는데다 단식이 20일이 넘어가니 우리는 매일 초조한 마음을 숨길 길이 없다.
과거사 생존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전체의 회복을 위해 분투하는 인간다움을 실천해 왔다. 사회는 더 이상 진실을 말하지 않은 채 회복을 거론할 수 없다. 진실이 없는 고통 완화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니와, 비인간적인 삶을 연명하라 강요하는 일이다. 생존자들의 인간다움에 응답하는 방법은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진실을 밝히고, 사과하고, 그 다음에 회복을 권하는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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